17 Jan 2026

대형 비리 스캔들 터진 우크라, 젤렌스키 대통령으로 향하는 수사 - 최측근 해외 도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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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터졌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를 고리로 한 에너지 인프라 공기업들의 뇌물 수수및 비리 구조가 10일 반(反)부패 기관의 끈질긴 수사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우크라이나의 구조적인 부패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뇌물 규모나 대통령 최측근 인사의 연루, 대통령과 반부패 기관 간의 암투설, 러시아군의 공습및 대규모 정전 사태, 도네츠크 전선의 불길한 전황 등과 맞물려 이번 뇌물 사건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정치적 위상을 뒤흔들 수 있는 '태풍'급으로 평가된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10일 하루를 정리하는 기획기사 중 '(젤렌스키 대통령의 최측근인) 민디치는 누구를 위해 전화를 하나'(По ком звонит Миндич) 코너에서 "국가 반(反)부패국(NABU, 나부)이 10일 에너지 부문의 대규모 부패 사건 수사의 일환으로 티무르 민디치의 자택을 압수 수색했다"며 "이는 대통령실을 겨냥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스트라나.ua는 "민디치는 압수수색 전날(9일) 국외로 몸을 피했지만, 전 에너지 장관이자 현 법무부 장관인 게르만 갈루셴코, 에너지 국영기업 에네르고아톰(Energoatom) 전·현직 대표들, NABU가 공개한 도청 자료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여전히 우크라이나에 남아 있다"며 "수사에 차질은 빚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NABU는 이날 사건 연루자 5명을 긴급 체포하는 등 모두 7명을 입건했다. 

 

 

우크라이나 반부패국(NABU) 수사관(위)와 급히 해외로 도피한 민디치/사진출처:반부패국, 스트라나.ua
우크라이나 반부패국(NABU) 수사관(위)와 급히 해외로 도피한 민디치/사진출처:반부패국, 스트라나.ua

앞서 나부(NABU)는 반(反)부패특별검찰국(SAPO)과 함께 민디치 자택 등 70곳을 전격적으로 압수수색했다. 이를 위해 지난 15개월간 (도청을 통해) 약 1천 시간 분량의 음성 녹음을 확보하는 등 증거 확보에 주력해 왔다고 한다. 비리 구조의 정점에 있는 누군가를 잡기 위해 치밀하게 작전을 짜고 준비해 왔다는 뜻이다. NABU 측은 "우리는 오늘에야 이번 작전의 마지막 단계를 진행했다”면서 “민디치가 전날 해외로 도피한 것은 조직 내부의 누군가가 귀띔해준 것으로 보고, 내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비리 구조의 얼개는 에너지 분야 고위 관료들이 에네르고아톰 등으로부터 방공망 구축이나 복구 사업에 대한 정부의 발주를 미끼로 거액의 돈(계약금의 10~15%)을 뜯어낸 것. 이 과정에서 발주를 끊겠다는 등 협박을 일삼아온 정황도 공개된 도청 자료에 의해 일부 드러나기도 했다. 

부패한 고위인사들의 밥이 된 우크라이나 에네르고아톰/사진출처:스트라나.ua
부패한 고위인사들의 밥이 된 우크라이나 에네르고아톰/사진출처:스트라나.ua

이 뇌물 구조의 핵심인사는 이미 방산 분야 등에서 여러 차례 부패 스캔들을 일으킨 우크라이나-체코 사업가 민디치다.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과거에 설립한 엔터 업체 ‘크바르탈 95’의 공동 소유주로, 그동안 배후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둘러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그러나 NABU의 압수수색 바로 전날, 회계책임자들고 함께 급히 우크라이나를 떠났다.

이번 수사의 작전명은 '미다스'다. 스트라나.ua는 "민디치에서 나온 게 분명하다"며 "발음이 비슷할 뿐만 아니라, 인터넷에 올라온 민디치 아파트에는 황금 변기가 설치돼 있다"고 강조했다. 만지는 족족 모든 것을 황금으로 바꾼,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왕 '미다스(의 손)'를 연상케한다. 

NABU는 또 미국 달러와 유로, 우크라이나 흐리브냐 등 현찰 다발과 현찰 다발로 가득 찬 돈 가방 사진을 공개했다. 이들은 챙긴 뒷돈을 키예프(키이우) 중심가의 별도 사무실에서 관리하고, 역외 기업 네트워크를 통해 1조 달러 이상을 (돈)세탁했다고 NABU는 밝혔다.

NABU가 공개한 달러, 유로화 다발이 든 가방/사진출처:반부패국
NABU가 공개한 달러, 유로화 다발이 든 가방/사진출처:반부패국

이번 사건은 수사 확대 여부에 따라 젤렌스키 대통령의 정권 기반을 뒤흔들 것으로 우려된다. 인터넷으로 올라온 소위 '민디치 아파트 도청 테이프'에는 젤렌스키 대통령도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NABU가 도청 파일을 이날 처음으로 일부 공개한 만큼. 젤렌스키 대통령의 부패 혐의를 입증할 '스모킹 건'(결정적인 증거)이 등장할 수도 있다.

사건 발표 시점도 젤렌스키 대통령에게는 불리한 정황이다. 도네츠크주(州) 전략 요충지 포크로프스크의 함락 임박설이 나돌고 자포로제(자포리자)주(州) 동쪽 방어선이 무너졌다는 주장도 나온다. 또 에너지 기반 시설에 대한 러시아군의 잇딴 공습으로 우크라이나의 올 겨울이 유난히 추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에너지 분야 전문 매체 '경제적 진실' (Экономическая правда)은 10일 "발전량이 이미 부족하고, 앞으로는 더 나빠질 것"이라며 "러시아군의 최근 공습으로 최소 1기가와트의 발전량이 손실됐다"고 주장했다. 에너지 분야 소식통은 이 매체에 "원자력 발전소에 전력을 공급하는 변전소가 파괴됐고, 트리필스카 화력 발전소와 즈미예프스카 화력 발전소는 가동이 중단됐다"고 전했다. "따라서 전력 부족 상태는 장기화될 것이며, 피해 시설을 신속하게 복구할 수도 없는 게 현실"이라고 그는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전날(9일) 우크라이나 에너지부는 발전소의 피해 복구 작업이 상당히 지연되고 있으며, 센트레네르고의 모든 화력 발전소도 가동을 중단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발생한 에너지 인프라 화재를 우크라이나 소방대가 진화하는 모습/사진출처:우크라 비상사태부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발생한 에너지 인프라 화재를 우크라이나 소방대가 진화하는 모습/사진출처:우크라 비상사태부 

정치적으로도 젤렌스키 대통령은 불안한 입지에 빠져 있다. 지난 여름, 조직 개편을 두고 충돌한 반부패 당국이 대통령실을 벼르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이렇다.
우크라이나 반부패기관(NABU와 SAP)은 지난 초여름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민디치와 체르니쇼프 당시 부총리에 대한 부패 혐의를 파고 들었다. 이에 질세라 대통령실도 곧바로 반격을 가했다. NGO인 반부패센터의 창립자 비탈리 샤부닌에게 수사 통보를 했고, 최고라다(의회)를 통해 NABU와 SAP의 권한을 상당 부분 박탈하는 법안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부패 척결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항의 시위에 나서고, 영국과 유럽연합(EU)이 강력하게 법안 철회 압력을 가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지난 7월 법안을 철회하면서 뒤로 물러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U는 부패 척결 등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요건 준수를 촉구하는 보고서를 내는 등 강경 태도를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이 보고서는 NABU와 SAPO에 대한 정권의 압력을 중단하는 것은 물론, 국제 전문가들의 참여 등을 통해 다른 보안 기관들이 대통령실의 직접 통제에서 벗어나도록 할 것을 요구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에너지 부문의 비리가 폭로되자 젤렌스키 대통령실과 우크라이나 에너지부는 서둘러 NABU의 수사를 지지한다고 발표하며 꼬리 자르기에 나선 모양새다. 드미트리 리트빈 대통령 보좌관은 "필요한 모든 절차적 조치의 지원"을 약속하며 "(용의자들의) 처벌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밝혔다. 에네르고아톰을 관할하는 에너지부의 스베틀라나 그린축 에너지부 장관도 "조사에 전적으로 협조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스트라나.ua는 NABU의 이날 발표는 대통령에게 매우 우려스러운 신호이며, 포탄이 점점 더 가까이서 떨어지고 있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나아가 우크라이나의 정국 대치가 더욱 심화되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고도 했다.

우크라이나 정국은 현재 젤렌스키 대(對) 반(反)젤렌스키 세력으로 갈라진 형국이다. 지난 5월로 대통령의 공식 임기가 끝나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전시 권력 강화에 저항하는 세력이 등장하기 시작한 이후 형성된 정치 지형도다. 반부패 조직들과 NGO 등 시민단체, 우크라인스카 프라우다 등 언론, 페트로 포로셴코 전 대통령과 클리치코 키예프 시장 등 야당 정치인이 이심전심으로 반젤렌스키 편에 섰다.

반젤렌스키 세력에 동참한 포로셴코 전대통령/사진출처:페북@petroporoshenko
반젤렌스키 세력에 동참한 포로셴코 전대통령/사진출처:페북@petroporoshenko

위기를 느낀 젤렌스키 대통령은 대통령 직속의 국가국방안보회의(우리의 국가안보실 격)와 보안국(SBU)을 통해 강경 대응에 나섰다. 한동안 포로셴코 전 대통령이 부패 혐의로 감옥에 가고, 우크라인스카야 프라우다의 소유주인 '올리가르히' 토마스 피알라가 제재를 받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SBU는 지난 2023년 9월 유력한 '올리가르히'인 이고르 콜로모이스키를 사기와 돈세탁 혐의로 감옥에 보낸 바 있다.

최근에는 대통령실과 반부패기관 간의 2차 충돌 전망도 제기됐다. SBU가 러시아 정보기관을 위해 일했다(반역)는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한 페디르 크리스텐코 의원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로부터 신병을 인도받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반부패 기관의 핵심 관계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실토를 받아내면, SBU는 반부패기관들이 모스크바의 지시에 따라 젤렌스키 대통령의 측근에 대한 수사를 진행했다고 뒤집어씌울 수가 있다. 크리스텐코 의원의 신병 인도 후 SBU가 클리멘코 SAPO 수장을 곧 기소할 것이라는 소문이 실제로 돌았다. 

하지만 속절없이 시간만 흘러갔고, 대통령실이 이번에 반부패기관의 되치기에 거꾸로 당한 것으로 현지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시간 싸움에서 반부패기관이 이긴 셈이다. 

포로센코 전대통령이 이끄는 유럽연대는 10일 밤 현 내각의 총사퇴를 주장했다. 전시 국민통합정부를 구성하라는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향후 대응이 주목되는 정치적 공세다. 

이번 사건에서 또 확인된 우크라이나의 부패 수준은 전쟁 발발 후 외국으로부터 쏟아져들어온 '눈먼 돈'(지원금) 때문에 더욱 나빠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 발표된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 TI)의 2024년 부패인식지수(CPI) 순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부패인식지수가 떨어지면서 180개국 가운데 공동 105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공동 30위, 러시아는 공동 154위, 북한은 공동 170위다. 

현지 SNS에서는 군인들은 전장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고위 인사들은 외국으로부터 온 눈 먼 돈(지원금)을 챙기기 위해, 각각 사투(死鬪)를 벌이고 있다는 밈이 나온다. 그 사이 일반 서민들은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인한 정전 사태와 어둠 속 공포, 다가올 겨울 추위에 떨고 있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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