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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국면 전개 두가지-유럽의 딜레마에서 계속
우크라이나 권력형 비리 스캔들과 이에 따른 정치적 급변, 미국 주도의 새 평화 계획(평화안), 우세한 전황 등으로 러시아는 이제 분명히 전쟁 승리에 대한 자신감에 차 있다. 제재와 같은 미-유럽연합(EU)의 조치나 국제적 여론, 분위기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느긋한 것 같다.
미 카네기 재단의 러시아·유라시아 센터의 타티아나 스타노바야 연구원은 지난달(11월) 25일 영국 BBC에 "푸틴 대통령은 그 어느 때보다도 군사적으로 자신감이 높은 상태"라며 "러시아의 입장은 현재 '우리의 요구는 이러이러하니 받을래, 말래?'라고 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나아가 "(우크라이나와 서방이) '받아들이면 전쟁을 중단하고, 거부하면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식"이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27일)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을 방문한 푸틴 대통령은 결산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내놓은 28개 항의 평화계획(새 평화안)과 미국과의 종전 줄다리기(협상), 전황 등에 관한 질문에 답변하면서 "우크라이나군이 (평화협상의 쟁점인 도네츠크주에서) 철수하면 적대 행위를 중단할 것이며, 철수하지 않으면 군사적 수단을 통해 목표를 달성(점령)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타노바야 연구원이 예측한 그대로다.
기자회견 이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8일 미국의 새 평화안과 푸틴 대통령의 반응을 보면 "'러시아 ( 지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다"며 "푸틴 대통령은 개전 초기부터 내세운 '우크라이나에 대한 통제권 확보'를 포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특히 새 평화안에 포함된 러시아 언어및 문화 교육 허용과 나치즘(우크라이나 민족주의/편집자) 선전 금지는 우크라이나 내 친(親)러 세력의 부흥을 돕고 궁극적으로 친러 정권의 수립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러시아권 속에 가두겠다는 의도라는 관측도 나온다. 러시아 입장에서만 보면, 4년에 가까운 전쟁을 치르면서 수많은 인명과 재산을 잃은 대가를 얻는 셈이다.
미 존스 홉킨스 대학 역사학과 교수 세르게이 라드첸코는 WSJ에 현재의 평화협상을 스탈린이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을 여러 개의 세력권으로 나누기 위해 미국에 동의를 구했던 '얄타 회담'에 비유했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통제하기 위해 당사자를 배제한 채 미국과 거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승국이어야만 가능한 딜(거래)다.

물론 당사자(우크라이나)는 완강히 버티는 모양새다. 30일(현지시간) 미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새 평화안을 놓고 두번째로 마주앉은 미-우크라 양국은 예의 "생산적인 회담"이라고 발표하면서도 아직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핵심 쟁점에 속했던 영토 문제(우크라이나의 도네츠크 양보)와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 문제, 전후 재건 사업 지원 등에서 이견이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협상단 단장인 우메로프 국가안보국방회의(우리의 국가안보실 격) 서기(장관급)로부터 보고를 받은 뒤 "협상단이 영토 문제에만 6시간 30분 간 매달렸다"며 "전후 복구 자금 문제는 유럽 파트너들의 참여 없이는 어렵고, 안보 보장 문제도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스티브 위트코프 미 대통령 특사는 우메로프 대표와 단독으로 회동하고 젤렌스키 대통령-유럽 주요국 정상들과도 '콜렉트 콜'(합동 전화) 협의를 한 뒤 모스크바로 향했다. 미국으로서는 러시아와 원만하게 협의를 마칠 수 있는 우크라이나 측의 양보안을 들고가야 할 형편인데, 그 정도까지는 아닌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미 대통령은 여전히 협상에 낙관적이다. 그는 지난 30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에서 워싱턴으로 향하는 전용기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이 타결될) "좋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그는 "몇 가지 까다로운 문제들이 있다"면서도 "(협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 부패와 관련된 문제"라고 했다. 부패 스캔들로 궁지에 빠진 우크라이나 측이 끝까지 '떼를 쓰고 있다'는 말이 아니라면, 뜬금없는 발언이다.
일부 언론에 따르면 양국은 푸틴 대통령이 주장하는 평화협정 서명자의 법적 정당성 문제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28개항 초안에는 100일 후에 선거를 치르기로 되어 있다.
푸틴 대통령은 키르기스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의 현 지도부와 문서(평화협정)에 서명하는 것은 법적 정당성을 잃었기 때문에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난해 5월로 공식 임기가 끝났다는 이전 주장의 연장선 상에 있다. 그는 "우크라이나 당국이 선거 실시를 두려워한 것은 전략적 실수였다"며 "누구든지 협상을 할 수는 있지만, 그 결과물은 국제 사회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도 했다. 우크라이나는 물론, 주요 서방 국가들도 평화안이 타결된다면, 공식적으로 이를 승인하고, 더이상 시비를 걸지 말라는 사전 요구다.

앞으로 주목할 것은 임박한 미-러 협상에서 러시아의 양보를 얻어낼 수 있는 미국의 전략이다. 모스크바로 향하는 위트코프 특사가 급유를 위해 아일랜드에 내려 젤렌스키 대통령과 마지막 절충을 시도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오고 있지만, 분명히 현재 그의 손에 든 (수정) 평화안으로는 크렘린을 만족시키기에 부족하다. 그렇다면 그가 모스크바에서 협상의 기본인 '기브 앤 테이크'(주고받기)를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우크라이나가 선거 문제를 양보하고, 러시아가 전후 재건 사업에 더 기여하는 방안이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금지 조항을 모호한 문구로 넘어가는 것(CNN 보도)도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가 2일 위트코프 특사와의 만남에서 얼마나 유연하게 대응할지 짐작하기 힘들지만, 만약 미국이 '주고 받기'를 원할 때 러시아가 거부하면 자칫 미국에 타협을 원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줄 수가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원하는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을 미-러 사이에 유도하는 시나리오다. 러시아가 끝끝내 양보를 거부한다면, 미국이 유화적인 태도에서 강경한 태도로 또다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내 매파(대러 강경파)와 유럽 주요국가들은 곧바로 환영하고 나설 것이다.
중요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최종 결정이다. 협상의 달인인 그가 협상에서 '갑'의 위치에 있는 러시아의 요구를 들어줄 것인지, '을'인 우크라이나의 입장도 고려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을'의 입장으로 돌아선다면, 평화협상은 다시 교착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푸틴 대통령에게는 미국의 태도 변화를 막을 유연한 협상술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진지하게 논의하겠다'는 주의다.
그는 키르기스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미국의 (평화) 계획을 진지하게 논의할 준비가 끝났다"며 "합의문 초안이 향후 협정의 토대로 활용될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최종 버전은 없다"면서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스위스 제네바 협상에서 수정된 계획안을 전달받았으며, 당초 28개 항이 4개 분야로 분류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위트코프 특사가 모스크바로 들고올 최종안을 보고 계속 논의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다만,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도네츠크와 루간스크주)을 러시아 영토로 인정하는 문제가 협상의 핵심 주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토 문제는 양보할 의사가 없다고 단서를 단 셈이다.

미국의 새 평화안이 어떻게 수정되었는지 알 길은 없다. 지난달(11월) 19일 미국이 28개 항목의 평화 계획을 발표한 뒤 러-우크라는 23일 제네바에서 유럽 주요 국가들의 참여 하에 후속 회담을 가졌다. 이후 키예프(키이우) 측은 모두가 알고 있는 초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제네바 회담에서 평화안이 28개 항목에서 19개 항목으로 축소됐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틀 후 트럼프 대통령은 22개 항목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30일 마이애미에서 미-우크라는 2차 후속회담을 가졌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미국과 논의할) "최종 버전은 아직 없다"고 밝혔다. 모든 협상이 그러하듯, 아직은 수정에 수정을 가하는 상황이어서 언론 보도와 주장, 발언들이 혼란스럽다. 위트코프 특사가 2일 크렘린에서 푸틴 대통령과 만난 뒤 종전에 관한 좀 더 명확한 그림이 공개될 수 있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때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다. 러시아의 대응도 그 이후에야 보다 명확해질 것이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