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Jan 2026

러시아 그림자 선단 소속 유조선, 우크라 해상드론에 피격 이후 - 러시아의 대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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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연안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파고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우크라이나군의 전력이 도네츠크주 전선에서 계속 밀리고 있는 상태에서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이 러시아의 전쟁 자금줄인 석유 수출을 막기 위해 소위 '그림자 선단'의 유조선을 공격한 게 발단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반에는 거꾸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해상 물류를 차단하기 위해 흑해 봉쇄를 시도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헛심만 쓰고 말았다.

이후 우크라이나가 무인정(보트, 해상드론 혹은 수상드론)을 띄워 러시아 흑해함대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이 역시 러시아 측이 흑해함대 보호 방안을 마련하고, 우크라이나 수상드론 저격에 적극 나서면서 파급력은 크게 줄었다. 

우크라 해상드론 '마구라'/사진출처:군정보총국 GUR
우크라 해상드론 '마구라'/사진출처:군정보총국 GUR

 

도네츠크내 여러 전선에서 러시아군에 밀리고, 친(親)러시아 성향의 트럼프 미 대통령 평화 계획(28개항의 새 평화안)이 모습을 드러내자, 우크라이나가 새롭게 시도한 게 러시아의 석유 수출망 차단 작전이다. 서방의 가혹한 제재 조치로 러시아 석유는 그동안 국제 표준의 유조선을 이용하기보다는 소위 '그림자 군단'에 의해 반출이 이뤄졌다. 서방의 대러 제재에 구멍이 뚫린 셈인데, 우크라이나의 해상 작전은 이 구멍을 메우기 위한 것으로 보면 된다.

하지만 전쟁 중 민간 선박에 대한 공격은 '전쟁 범죄'에 가깝다. 우크라이나군의 해상작전에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우크라이나의 민간선박 공격이 주목을 받은 것은 지난달(11월) 28일 튀르키예(터키) 인근 흑해에서 러시아로 향하던 유조선 2척에 잇따라 화재가 발생하면서부터다. 이스탄불의 투르켈리 등대에서 약 28해리(약 52㎞) 떨어진 지점에서 감비아 선적의 유조선 카이로스(Kairos)호에 외부 충격(즉 드론 공격)이 가해지면서 화재가 발생했다. 카이로스호는 당시 화물을 싣지 않은 상태로 러시아의 흑해 연안 항구 노보로시스크로 항해 중이었다. 다행히 배에 타고 있던 승조원 25명은 무사히 구조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튀르키예에서 35해리(약 65㎞) 떨어진 지점에서 또 유조선 비라트(Virat)호에 화재가 발생했다. 이 배의 승조원 20명도 구조됐다. 

 
터키 해안에서 보이는 선박 화재(위)와 비라트호 SOS 타전 모습. 메이데이, 메이데이(국제조난신호)가 계속 올리고 있다/영상 캡처
터키 해안에서 보이는 선박 화재(위)와 비라트호 SOS 타전 모습. 메이데이, 메이데이(국제조난신호)가 계속 올리고 있다/영상 캡처

우크라이나 군정보총국(GUR)이 운영하는 '전쟁 제재'(War Sanctions) 사이트에는 화재가 난 카이로스, 비라트호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연합(EU)의 제재 명단에 올라와 있다. GUR은 카이로스호에 대해 "러시아에 대한 제재조치 이후 러시아산 석유를 제3국으로 수출하는 '그림자 선단'에 속한다"고, 비라트호에 대해서는 "인도와 터키 등 제3국으로 러시아 석유를 수출하는 데 관여한다"고 적고 있다. 

이들 사건은 우크라이나 안팎에 큰 충격을 던졌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지난달 30일 "터키 해안에서 러시아 그림자 함대 소속 유조선에 대한 드론 공격은 SBU가 실행한 것으로, 흑해 전쟁을 근본적으로 바꿀 만큼 폭발력을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우크라이나는 2023년 케르치 해협 인근에서 유조선을 공격했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항구를 공습하면서 이즈마일항에 정박 중이던 터키의 가스 운반선이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이번 공격은 그 이전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다른 국가의 영해 내에서, 또 공해에서 민간 선박을 표적 공격한 것은 지금까지 없었다. 적어도 노보로시스크항으로 향하던 카리오스, 비라트호가 드론 공격을 받기 전까지는 그랬다. 

당연히 러시아와 튀르키예는 발끈했다. 
러시아에서는 유조선 공격에 대해 "키예프가 평화 협상을 방해하기 위해 도발한 것"이라는 해석이 퍼졌고, 러시아 강경 군사 인플루언스들은 "언제까지 참아야 하나? 우리는 언제 대응할 것인가?"라며 보복을 요구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테러 행위"이자 "지속 가능한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국제적 노력(평화협상)을 방해하려는 시도"라고 가세했다. 푸틴 대통령도 2일 "해적행위"라고 부르면서 우크라이나를 바다에서 완전히 분리시키겠다고 경고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우리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영해)에 대한 안보 위협은 용납할 수 없다"며 강경 대응을 지시했다. 이에 터키 외무부는 4일 알렉세이 이바노프 앙카라주재 러시아 대사를 초치해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이바노프 대사는 양국간 협의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세부 사항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그림자 함대 공격에는 우크라이나 개량형 해상 드론 ‘시 베이비’가 동원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 측은 이번 작전이 무인수상정(수상드론) 다수를 이용한 정밀 기습이라고 밝혔다. 공개된 영상에는 '시 베이비'가 파도를 가르며 유조선에 접근해 폭발하는 장면이 담겼다. 

우크라이나 해상드론 '시베이비'/영상캡처
우크라이나 해상드론 '시베이비'/영상캡처

'시 베이비'는 원래 자폭형 드론이었지만, 이제는 장거리·다목적 무인드론으로 개량됐다. 최신형은 작전 사거리가 최대 1,500㎞에 달한다고 한다. 또 900㎏급 폭발물이나 최대 2톤의 화물을 실을 수도 있다. 소형 정찰 드론 발사대와 기뢰 투하 장치를 장착해 정찰과 타격 임무를 동시에 수행하기도 한다. 

유조선 피격 사건 이튿날(29일)에는 카스피해 파이프라인 컨소시엄(CPC)의 해상 터미널이 공격을 받았다. 원격 계류 시설 (VPU)-2 지점이 심각하게 손상됐다. 선적은 중단되고 유조선은 CPC 해역 밖으로 예인됐다. 다행히 기름 유출은 없었다고 한다. 

CPC의 한 당사자인 카자흐스탄은 즉각 우크라이나를 향해 "해상 터미널 공격이 아스타나(카자흐스탄 수도)와 키예프(키이우) 양국 관계를 훼손하고 있다"며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이에 우크라이나 외교부는 1일 "회원국의 자위권을 규정한 유엔 헌장 51조의 틀 안에서 행동하고 있다"며 "모스크바가 가능한 한 빨리 분쟁을 종식시키도록 힘을 보태줄 것"을 되레 촉구했다. 또 "카자흐스탄 국민에 대한 변함없는 존경과 카자흐스탄과의 우호적이고 실용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CPC 시설이 드론 공격을 받은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크로포트킨스카야 펌프장은 지난 2월 17일 드론 7대의 공격을 받았다. 이 펌프장은 복구 작업을 거쳐 지난 5월 가동을 재개했다. 

세네갈 해안에서 침몰위기에 몰린 메르신호. 한쪽으로 자꾸 기울고 있다/영상 캡처
세네갈 해안에서 침몰위기에 몰린 메르신호. 한쪽으로 자꾸 기울고 있다/영상 캡처
카스피해 파이프라인 컨소시엄 해상터미널/사진출처:텔레그램
카스피해 파이프라인 컨소시엄 해상터미널/사진출처:텔레그램

하루 뒤인 30일에는 러시아산 원유를 실은 파나마 국적의 유조선 메르신(M/T MERSİN)이 아프리카 세네갈 해안에서 침몰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유조선은 지난 8월 러시아 타만 항구에 입항해 한동안 정박한 뒤 아프리카로 향했다. 공식 발표는 아직 없지만, 우크라이나 연루 '사보타주'(비밀 폭파작전)로 추정되고 있다. 

12월 2일에는 해바라기유를 싣고 러시아를 출발해 조지아(그루지야)로 향하던 미드볼가 2호가 터키 해안에서 80해리(약 148㎞) 떨어진 해상에서 공격을 받았다고 터키 해양사무국이 알렸다. 미드볼가 2호는 러시아 선적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항에 등록된 해운회사 '미들볼가' 소속이다.

러시아와 터키, 흑해 주변에서 잇따라 민간 선박 공격 사건이 발생하자, 주변 국가들도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설 태세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루마니아는 3일 흑해 연안에서 우크라이나의 해상드론 '시 베이비' 1척을 폭파했다고 밝혔다. 루마니아 해군 폭발물 처리반 잠수부들이 해안경비대의 요청을 받고 해상드론을 무력화했다는 것이다. 

국제사회의 반발에 직면한 우크라이나 외무부는 2일 해바라기유 수송 선박에 대한 공격은 러시아의 '가짜 깃발 작전'(자작극)이라고 주장했다. 게오르기 티히 대변인은 "우크라이나는 이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잇딴 해상 도전에도 대응을 자제하는 느낌이다. 러시아는 마음만 먹는다면, 우크라이나 항구로 향하는 민간 선박을 공격해 해상 운송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는 군사 및 기술적 역량을 갖고 있다. 이를 실행에 옮길 각종 미사일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항구와 인근 해역에 대한 공습에만 나설 뿐, 공해상의 선박은 건드리지 않았다. 앞으로도 공격하지 않을 것으로 확실시된다.

자칫 선제, 혹은 대응 공격에 나섰다가 친러시아 성향의 글로벌 사우스(남반구) 등 국제사회의 비판은 물론, 우크라이나의 후속 보복 공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러시아에게도 흑해의 해상 안전은 아주 중요하다. 

또 러시아가 보복에 나섰다가 흑해 해상전이 더욱 확대되고 도네츠크 전선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 전쟁의 불길이 치솟으면 트럼프 대통령 주도의 평화협상에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에게는 '러시아가 종전에는 관심이 없고, 평화협상에 임하는 것은 '시간끌기'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펼 근거만 제공할 뿐이다. 전쟁 종식을 위한 유리한 조건을 확보한 러시아로서는 흑해에서 섣부르게 행동에 나서는 것은 득보다 오히려 실이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현재의 협상이 끝내 실패로 끝나고 러시아 항구로 향하는 민간 선박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해상드론 공격이 계속된다면, 러시아도 생각을 달리할 수 있다. 

그 경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해안선뿐만 아니라 공해상의 선박을 공격하면서 우크라이나 항구 봉쇄를 선포한다면, 특히 러시아의 허가 없이는 선박의 우크라이나 입항을 금지한다면, 흑해 해상 운송은 봉쇄될 것이다. 우크라이나에게는 흑해가 해상으로 통하는 유일한 루트이기 때문에 흑해 봉쇄는 국가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안길 가능성이 크다.

흑해 유조선 피격 사건은 러-우크라 관계 뿐만아니라 국제 해운 안전 규범과 보험 체계, 환경 리스크에도 파급될 수 있다. EEZ 내 민간 선박이 공격당하는 사례가 늘면 각국은 해운사 보안 강화와 감시 체계 재정비에 나설 수밖에 없다. 더 확전된다면 흑해 전역의 상선 운항이 중단될 수 있다. 모든 연안 국가들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시나리오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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