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Jan 2026

러시아 동결 자산 놓고 미-EU 충돌? EU 수장의 '배상금 대출' 무리수 앞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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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8∼19일 열리는 유럽연합(EU) 정상회의를 앞두고 러시아 동결 자산을 활용해 우크라이나에 재정 지원하는 소위 '배상금 대출'이 마지막 시험대에 올랐다. 배상금 대출을 반대하는 측의 저항이 거센 가운데, 미국이 새 평화안에서 러시아 동결자금의 다른 사용법(일부는 우크라이나 전후 복구 자금, 일부는 미-러 공동 투자 자금 활용/편집자)을 제시해 충돌 가능성도 높아졌다. EU 정상회의에서 과연 어떤 결론이 내려질지 주목된다.

EU 정상들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화상 연설을 듣고 있는 모습/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EU 정상들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화상 연설을 듣고 있는 모습/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와 rbc 등 러시아 매체에 따르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3일(현지시간) 브뤼셀에서 "향후 2년 동안 우크라이나 재정적 수요의 3분의 2를 충당하기 위한 방안"이라며 900억 유로(약 153조원)의 대(對)우크라 지원 방안을 공개했다. 나머지 3분의 1은 국제사회의 파트너들이 조달할 것이라고 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EU 공동 차입 혹은 '배상금 대출'을 자금 조달 방식으로 제시했지만, 방점은 배상금 대출에 찍혔다. '손(유럽 자금) 안 대고 코 푸는(자금 제공)'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또 배상금 대출 반대 세력을 겨냥해 "이번 제안이 (실질적으로 가장 반대하는) 벨기에가 제기한 거의 모든 우려를 고려한 것"이라고도 했다. 

배상금 대출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이후 대(對)러 금융 제재로 EU에 동결된 러시아 자산(약 3천억 유로)를 보증금으로 삼아 2년간 우크라이나에 총 1천400억 유로(약 233조원)를 무이자로 빌려준다는 것이다. EU에 동결된 러시아 자산의 대부분은 벨기에에 있는 중앙예탁기관(CSD)인 유로클리어에 들어 있다.

유로클리어/사진출처:위키피디아
유로클리어/사진출처:위키피디아

그녀의 기자회견을 계기로 배상금 대출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또다시 터져나왔다.
유로클리어를 관할하는 벨기에 정부는 향후 법적 책임과 러시아의 보복을 우려해 기존의 반대 입장을 거듭 천명했다. 이에 메르츠 독일 총리가 4일 미국의 새 평화안에 담긴 동결자산 활용 방안에 대해 "유럽이 보유한 러시아 자산을 미국에 넘길 수 없다"고 반대 입장을 표명한 뒤 이튿날(5일) 바르트 드 베버 벨기에 총리를 만나 '배상금 대출'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드 베버 총리의 입장은 여전히 완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6일에는 실무 책임자인 유로클리어의 발레리 위르뱅 CEO가 나섰다. 위르뱅 CEO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대출을 자산 몰수로 간주한다"며 "동결된 러시아 자산에 손을 대는 것은 위험하며, 모스크바로부터 보복 조치를 당할 수 있다"고 반대했다. 구체적으로 유로클리어에 대한 러시아의 법적 조치와 벨기에 자산의 압류 가능성을 제시했다. EU(집행위원회) 측이 '동결 자금의 대출'은 대출일뿐 '몰수'가 아니라고 주장한 데 대해 그녀는 "러시아는 몰수로 간주하고 대응할 것"이라는 상대성을 강조한 것이다.

발레리 위르뱅 유로클리어 CEO/사진출처:euroclear.com
발레리 위르뱅 유로클리어 CEO/사진출처:euroclear.com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 EU 경제담당 집행위원은 "위원장이 제안한 방식(배상금 대출)은 법적으로 탄탄하며, EU법과 국제법에 전적으로 부합한다"며 "나아가 회원국들에게 대출을 뒷받침하기 위한 '보증' 을 요청할 것이며, 이는 공정한 회원국 간 부담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특정 회원국(벨기에)이 러시아의 법적 소송에 대가를 치르도록 내몰릴 가능성은 매우 낮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유로클리어 측은 "러시아 GDP(1조 4,846억 556만 달러, 한국은행 2022년 통계/편집자)의 10~15%로 추산되는 자산의 활용은 대(對)러 협상에서 '훌륭한 카드'가 될 것"이라며 "이를 협상 도구로 쓸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하는 복잡한 법적 체계를 만드는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그들(러시아)을 평화 과정에 참여시키는 것이 더 낫다"고 반박했다. 

드 베버 벨기에 총리도 앞서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믿지 않으며, 동결된 러시아 자산이 몰수되면, 모스크바가 벨기에 자산에 대해서도 비슷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우려한 바 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도 4일 "배상금 대출에 우려하는 나라는 벨기에만이 아니다"며 유럽 회원국들의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EU의 한 고위 인사는 FT에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자연재해 등 비상사태에 대한 권한 행사라는 이유로 '가중다수결'을 헝가리의 거부권 행사를 회피하는 방안으로 제시한데 대해 "이건 미친 짓이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이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회원국들이 이를 받아들일지도 불확실하고, 이같은 선례는 앞으로 광범위하게 (나쁜)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중다수결'은 회원국이 각기 1표를 행사하는 단순 다수결이 아니라 회원국의 인구, 경제력, 영향력 등을 고려해 각각 다르게 배정된 표를 합산해 가결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눈에 보이는 '꼼수'와 다를 바 없는 이같은 방식에 대해 장 클로드 피리 전 EU법률서비스 사무총장은 "법적 쟁점이 많은 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EU의 승인에) 집착하는 것은 (대우크라 지원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거꾸로 이는 유럽 국가들의 대우크라 지원 의지가 약해지고, 대안을 찾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EU 고위 인사는 "정면으로 벽에 부딪히는 게 아니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예스'"라고 인정했다.

미국의 새 평화안도 EU의 최종 결정에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 독자적인 러시아 동결 자산의 활용법을 새 평화안에 적시한 미국은 몇몇 유럽 국가에게 배상금 대출을 차단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 평화 협정을 체결하는 데 필요하다는 이유를 댔다고 한다. 메르츠 독일 총리가 이에 가장 먼저 반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집행위원회를 곤혹스럽게 만든 것은 또 있다. 헝가리가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EU의 유로채권 발행 계획을 차단하고, 페데리카 모게리니 전 EU 외교안보 고위대표(집행위원회 위원) 등이 부패 혐의로 구금된 낯뜨거운 사건이다. EU의 대우크라 지원 단일대오 형성에 걸림돌이 될 게 분명하다.  

미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헝가리는 '배상금 대출'이 기각될 경우에 대비해 EU가 대안으로 갖고 있는 유로채권의 발행 계획을 미리 차단했다.
이에 앞서 유럽검찰청(EPPO)은 3일 모게리니 전 대표 등 고위 인사들을 EU 외교관 양성 프로그램과 관련한 입찰 비리와 이해 충돌, 직업 기밀 위반 등 혐의로 체포해 조사했다고 밝혔다. 이 부패 스캔들이 앞으로 집행위원회를 어디까지 흔들어 놓을지 모른다. 

러시아의 반응은 더 공격적이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는 러시아 안보회의 부의장(전 대통령)은 4일 텔레그램을 통해 "동결된 자산이 몰수되면 EU에 배상금을 요구하고,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는 "러시아 자금을 훔치려고(몰수) 하는 행위는 국제법상 특별한 종류의 전쟁 명분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은 2일 유럽이 전쟁을 시작하면 러시아는 즉각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EU 내부의 복잡한 사정과 미국의 새 평화안 제시로 EU 정상회의가 순탄하게 대우크라 지원 방안을 매듭짓기는 어려워보인다. 막판에 '신의 한수'가 튀어나올 수도 있는데, 그게 무엇일지도 궁금하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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