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Jan 2026

러시아 영화 '거장과 마르가리타' 국내 개봉-'위대한' 원작에 얽힌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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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국내에서 개봉된 러시아 영화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20세기 러시아 '장르 문학'을 대표할 만한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이다.

우크라이나 키예프(키이우) 출신의 미하일 불가코프가 쓴 원작 소설 '거장과 마르가리타'은, 그가 사망하기 한달 전(1940년 2월)에 탈고했으나 소련 당국의 검열에 막혀 출간되지 못했다. 1967년에야 잡지 '모스크바'에 게재됐고, 1973년 무삭제판이 나오면서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TV 드라마와 영화로 재탄생하면서 더욱 유명해진 장르문학 걸작이다. 

러시아 인터넷 쇼핑몰 오존.ru에서 팔리는 불가코프 장편 소설 '거장과 마르가리타' 2024년판/사진출처:오존.ru
러시아 인터넷 쇼핑몰 오존.ru에서 팔리는 불가코프 장편 소설 '거장과 마르가리타' 2024년판/사진출처:오존.ru

 

불가코프는 생전에 독재자 스탈린의 배려로 극장(여기서는 주로 연극)에서 오래도록 일했는데, 소설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주 무대도 극장이다. 연극 무대에 올리는 희곡은 물론, 단편도 많이 쓴 그가 장편 '거장과 마리가리타'도 공연을 염두에 뒀다는 주장도 있다. 

원작의 영상화를 놓고 러시아 안팎에서 여러 차례 시도가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원작에 충실했다는 평을 듣는 영화가 이번에 국내에서 개봉된 마이클 락신 감독(러시아 이름은 미하일 록쉰 Михаил Локшин)의 '거장과 마르가리타'(러시아에서는 2024년 1월 개봉/편집자)다.

 
러시아 영화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2024년 1월 포스터(위)와 한국 개봉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포스터/사진출처:㈜누리픽쳐스
러시아 영화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2024년 1월 포스터(위)와 한국 개봉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포스터/사진출처:㈜누리픽쳐스

락신 감독은 영화를 찍으면서 원작에서 엿볼 수 있는 작가의 상상력과 현실의 긴장감을 동시에 시각화하는 데 주력했다고 한다. '장르문학'이 주는 끝없는 상상의 날개와 시각적 스펙터클이 스크린 곳곳에 묻어난다. 원작의 판타지 서사를 충실하게 재현하면서도 현대적 영화 언어로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영화(소설)의 주 무대는 주인공인 악마 볼란드와 그의 일행(수하)이 도착하는 1930년대 모스크바와 폰티우스 필라투스 시대(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소위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 총독으로 있던 시절/편집자)의 예루살렘이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소설은 악마 볼란드가 소비에트 치하의 모스크바에 나타나 벌이는 일련의 소동을 그린다. 볼란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토론하고 있던 소련 문학 협회장 베를리오즈와 시인 베즈돔니에게 접근해 "내가 예수가 처형되는 현장에 있었다"면서 두 사람의 운영을 예언한다. 베를리오즈는 목이 잘리고, 베즈돔니는 정신병동에 갇힐 것이라는 예고다. 실제로 두 사람의 볼란드의 예언대로 된다. 베즈돔니는 정신병원에서 예수와 본디오 빌라도에 대해 작품을 썼다는 '거장'(мастер)을 만난다.

무대는 거장이 쓴 작품 속 예루살렘으로 넘어간다.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철학자 예슈아 하노츠리(예수를 상징/편집자)를 만난다. 로마 황제에 대한 불손한 발언 때문에 예슈아는 처형당하고, 그를 살리려고 했던 빌라도는 밀고자 '유다'를 암살하도록 명령하는 등 죄책감을 씻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괴로움 사로잡힌 빌라도는 보름달이 뜨는 밤마다 불면증에 시달린다.

이 작품을 쓴 '거장'은 당국의 작품 혹평과 정치적 박해에 반쯤 미친 상태에서 그의 집을 탐낸 이웃의 고발로 정신병원에 들어왔다. 거장을 죽도록 사랑하는 유부녀 마르가리타는 아예 목숨을 걸고 악마 볼란드 수하의 제안에 응한다. 볼란드가 여는 '죽은 자들의 무도회'에 참석하는 조건으로 '거장'도 데려올 수 있도록 한 것. 그렇게 완성한 거장의 작품을 읽은 예슈아(예수)는 악마 볼란드에게 빌라도를 불면증에서 풀어주게 하고,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무도회를 통해 영원한 안식의 세계로 떠난다.

원작에 충실한 이 영화는 현실과 상상, 정치적 박해와 개인적 열망 사이의 다층적 구조가 거대한 서사를 이루며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를 영상으로 옮긴 시각적 연출 또한 매력적이다.

특히 공개된 메인 포스터에서 불길에 휩싸인 원고와 볼란드의 존재는 원작 속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구현했다는 평. 아무리 박해를 받아도 “원고는 불타지 않는다"는 구절을 시각화한 연출이 강렬한 뒷맛을 남긴다.

영화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한 장면/사진출처:㈜누리픽쳐스
영화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한 장면/사진출처:㈜누리픽쳐스

원작을 영상으로 옮기는 시도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폴란드 출신 감독 안제이 바이다는 1972년 '빌라도와 다른 사람들'이란 영화를 만들었고, 러시아의 유리 카라 감독은 1994년 제작을 끝냈지만, 유족과의 법적 분쟁으로 영화를 2011년에야 개봉했다.

가장 호평을 받은 작품은 블라디미르 보르트코 감독의 TV 시리즈(2005년)와 락신 감독의 이 영화다. 지난 7월 세상을 떠난 카라 감독은 "나의 영화가 원작의 정신에 가장 가까운 작품"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미 1990년대의 영상이다. 영상 기술 혹은 CG 등 시각적 연출 기법으로는 락신 감독의 영화를 따라가지 못할 게 분명하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볼라드역을 맡은 아우구스트 딜은 인간과 초자연적 존재 사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현실과 환상을 무리없게 보여주고, 율리아 스니기르가 맡은 '마르가리타'는 섬세한 감정선으로 거장의 창작 과정을 비추며, 극적 긴장을 만들어 나간다. 

조니 뎁/사진출처:페북@JohnnyDepp
조니 뎁/사진출처:페북@JohnnyDepp

더욱 주목되는 것은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 조니 뎁이 이 영화에 도전한다는 사실이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조니 뎁은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홍해 영화제에서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제작 계획을 밝히면서 주연을 맡는다고 발표했다. 촬영은 2026년 말부터 시작될 예정인데, 완성되면 영어로 만든 첫 '거장과 마르가리타' 영화로 기록된다. 조니 뎁과 함께 스티븐 듀터스, 스티븐 말릿이 제작에 함께 한다. 

2024년 1월 개봉한 이 영화는 러시아 박스오피스 3주 연속 1위, 해외 시상식 14관왕, 10개 부문 후보 지명 등 작품성과 흥행성을 함께 지녔다. '장르문학'의 특성에 충실한 판타지와 감각적 연출이 대중의 눈과 정신을 즐겁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결국 락신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은 칭찬받을 만하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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