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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의 미국 압송 등 무차별적인 '힘의 행사'를 멈출 수 있는 것은 나의 도덕성이며 국제법은 필요없다고 말한 것으로 8일 전해졌다.
이날 공개된 미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를 향해 당신이 휘두르는 권력에 어떤 견제 장치가 있느냐'는 질문에 “단 한 가지, 나의 도덕성이며, 나를 멈출 수 있는 건 그게 전부”라며 “나에겐 국제법이 필요 없다”고 말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리더십을 강화하기 위해 군사·경제·정치적 수단을 사용하는데 사실상 무제한적인 자유를 누리고 있으며, 국가간 대립에서도 조약이나 법률, 관례가 아니라 힘을 결정적인 요소로 여긴다는 뜻"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베네수엘라 사건을 중국이나 러시아가 악용할 수도 있다는 관측에 대해 “대만을 중국의 일부로 여기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무엇을 할지는 그가 결정할 일”이라면서 “그러나 나는 그가 그것(대만 침공)을 하면 매우 기분이 나쁠 것이라고 (그에게) 전했다”고 말했다. 또 “그가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러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에 앞서 국제 관계에서 '힘의 법칙'을 과시했던 이는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아버지 부시)이다. 그는 2003년 3월 이라크를 공격하기 하루 전, 푸틴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이를 분명히 했는데, 대화 내용이 8일 공개됐다.
rbc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미 국가안보문서보관소(National Security Archive)는 이날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이 이라크 공격을 시작하기 이틀 전(시차를 감안하면 하루/편집자)인 2003년 3월 18일 부시-푸틴 대통령 간의 전화 통화 내용을 기밀해제했다. 다국적군의 이라크 공격(작전명은 이라크해방작전, Operation lraq Freedom)은 3월 20일 새벽에 시작됐다.
이 대화에서 부시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 정권의 교체를 위해 '힘의 법칙'을 내세웠고, 푸틴 대통령은 "힘의 법칙은 법의 법칙으로 대체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여기서 '힘의 법칙'은 트럼프식 군사력 동원, '법의 법칙'은 국제법 존중을 뜻한다.

기밀문서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이라크해방작전의 시작을 알렸고, 두 정상은 '힘의 법칙'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 하지만, 두 정상 모두 양국 관계를 해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라크를 침공하지 말 것"을 설득했으나 실패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공격이) 우리 관계를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된다"고 설득했고, 푸틴 대통령도 이에 동조했다.
부시 대통령은 (국제사회에) 반미 감정을 부추기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를 표시한 뒤 "당신(푸틴 대통령)은 일관되게 당신의 입장을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우리(미-러)의 관계를 존중해 주었다. 그 점에 대해서도 감사한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중동에서의 미-러 협력의 긍정적인 성과를 언급하며, "의견 차이가 아무리 심각하더라도 미-러 관계의 중요성이 최우선"이라고 동의했다.
그러나 그는 통화 내내 유엔 헌장과 국제법을 들어 "당신(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정권 교체 목표는 유엔 헌장이나 국제법에 규정된 바가 없다"고 강조했다. 또 "가장 중요한 것은, '법의 힘'을 '힘의 힘'으로 대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며 "이 절차를 유엔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시 대통령은 "유엔 절차가 완료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푸틴 대통령은 대화 말미에 이라크 전쟁과는 상관없이 부시 대통령을 시 건립 300주년을 맞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초청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를 승락하면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도시 중 하나"라고 칭찬했다. 부시 대통령은 2003년 4월 이라크 바그다드를 점령한 뒤 5월 31일 상트페테르부르크 건립 30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러시아로 날아왔다.

다국적군의 이라크해방작전은, 공격 개시 20일만에 바그다드를 점령한 데 이어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고, 5월 1일 대대적인 군사작전 종료를 선언하면서 사실상 완벽한 승리로 끝났다. 후세인 대통령은 그해 12월 체포돼 2006년 12월 30일 이라크 최고재판소의 명령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미군의 철수와 함께 이라크는 내란에 휩쓸려 지정학적 불안정을 야기했다. 또 그동안 후세인 정권의 견제를 받았던 이란이 다시 역내 영향력을 회복했으며, 소위 '이슬람 공화국'의 사실상 출범 등 반(反)미 이슬람 급진 단체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