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May 2026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한류, 그리고 고려인

조회수

3180

게시일

2014-07-15

국가

러시아

 

한류 사각지대의 중심을 차지하는 나라는 어디일까. 한류의 영향에서 절대적으로 벗어난 곳이 있다. 등잔 밑이다. 조선 인민민주주의 공화국. 우리들이 통칭 그들을 가리키는 단어인 '북한'이라는 표현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우리가 자국을 한국(한국은 한반도에 있는 나라이며 한반도에는 대한민국민주주의공화국과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이 분단된 채 존재한다.)이라고 부르듯 그들은 자국을 조선이라고 부른다. 왠지 낯설다. 조선이라니, 물론, 가끔 세습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을 조선왕조에 빗대기도 한다.

한류 소식을 전하는 러시아 통신원 입장에서 생각해봤다.(한미 관계가 돈독하듯, 북한은 러시아와 가깝다)그렇다면 과연, 북한 사람들은 K-pop을 듣고, 한국영화나 드라마를 볼까. 한국 제품을 사용하고 있을까. 물론 모스크바에서도 북한 사람을 만나는 건 쉽지 않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조선어투가 조선족의 말소리인지, 북한 사람들의 대화인지 분간하기도 쉽지 않다. 북한 유학생들도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었다. 직접 확인한 몇 가지 사례를 들자면, 그들도 한류콘텐츠를 접한다. 북한 내 실상은 차치하고 외국 생활을 하는 북한 동포들은 K-pop은 물론 해외 검색 사이트를 통해 한국 영화를 보고, 한국 드라마를 시청한다고 한다. 삼성 핸드폰 등 한국 전자제품을 사용하는 북한 동포도 봤다. 이런 정보는 고려인들을 통해 전해 듣는다.

고려인(재러 한인)이나 조선족들과 북한 사람들 사이에는 괴리감이 없다. 통신원은 초등학교 때 반공 교육을 받은 마지막 세대다. 오랜 분단으로 고착된 이질감과 서해교전 등 북한 도발은 한반도의 평화적 분위기를 깨트리며 반공이데올로기의 폐해가 여전히 진행형 상태로 존속되고 있다. 동포지만 '가까이하기엔 너무먼 당신'이라는 의구심은 그래서 지울 수 없다.

이런 가운데, 국경과 문화, 언어를 뛰어넘는 한류의 사각지대, 금단의 땅인 북한과 남한을 가로지르는 대종주가 며칠 전 모스크바에서 첫 시동을 걸었다. 분단 이후 유라시아와 한반도를 잇는 사상 첫 대장정이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출발해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를 거쳐 시베리아 대륙을 따라 평양에 닿는다.

이후 8월 15일 광복절을 기념해 군사분계선(MDL)을 넘는다. 서울을 지나 부산에 다다르면 15,000km의 대장정이 막을 내린다. 15,000km라. 쉽게 와 닿지 않는다. 동유럽과 가까운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연해주동해 연안의 도시 블라디보스토크까지의 횡단철도 구간은 9,300km다. 꼬박 기차로 일주일, 항공편으로 9시간이다. 이 랠리는 고려인(재러 한인) 이주 150주년을 기념해 러시아 극동개발부와 고려인연합회 주최로 진행하는 행사다. 러시아와 한반도 간 우호 증진과 남북한 평화를 상징하는 기나긴 이번 여정의 주인공은 60여 명의 고려인들이다. 이들은 왜 유라시아와 남북을 잇는 횡단을 결정했을까. 간단하다. 한민족의 후손이며, 이산의 백성으로서, '조난의 역사'를 가진 재러 한인의 정체성을 고찰해보고 평화통일을 염원해서다.

연변의 조선족들이나 고려인들은 남북한 이데올로기 갈등을 겪지 않았다. 러시아인들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남인지 북인지 묻지만, 그들은 묻지 않는다. 1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코리언(카레이스끼예)일 뿐이다. 생존한 고려인 2세대들이 특히 그렇다. 그들의 후손인 3세대와 4세대들은 혈통을 빼놓고는 뼛속까지 러시아인이다. 그들은 한국말을 모른다. 어렸을 적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간간히 한국말로 대화하는 것을 우연찮게 들었을 뿐이다.

지금의 3세대들은 러시아인들로부터 차별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이나 소수자의 비애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소련이 붕괴하면서 다민족 국가인 러시아는 민족 정체성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이슈가 됐다) 재러 한인들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 그들은 사회 체제 변화에 발 빠르게 적응하면서 러시아 사회에 정착했고 몇몇 고려인들은 러시아 사회의 비중 있는 고위층 인사가 됐다.

러시아 신문(Российская газета)의 한국어판 '러시아 포커스'에 따르면 1990년대 중반부터 고려인들은 러시아 정부기관, 사업, 학문, 교육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노보시비르스크州 최고 갑부는 금융업계의 일인자로 군림하고 있는 이고리 김이라고 한다. 또 다른 사업가인 보리스 김은 러시아 및 CIS(독립국가연합) 지역 최대 결제 시스템 중 하나인 '키위(Qiwi)' 은행 공동 소유주이자 이사회 회장이다. 노보시르비르스크주 의원을 지내고 있는 고려인도 있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중앙아시아의 척박한 땅에 보내진 17만의 고려인들은 이제 카자흐스탄은 물론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맹활약 중이다. 러시아 록의 전설이자 젊은이들의 영웅인 故 빅토르 최는 러시아인들에게 있어 기념비적인 고려인이며  고려인 가수 아니타 최 역시 잘나가는 고려인 대중문화인이다.

통신원이 그것도 러시아 현지 한류를 소개하는 본인이 북한과 고려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이 생뚱맞아 보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도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와 한국 간 우호 관계가 급진전하는 전무후무한 작금의 상황은 유라시아 지역 한류 활성화에 있어서도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박근혜 정부의 대외 협력 구상인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유라시아의 지역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 유라시아하면 소비에트사회를, 공산주의를, 빨간색을 떠올렸다. 한국은 이제 이곳에 자원, 외교 협력의 노란리본을 달고 서서히 다가가고 있는 중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중앙아시아 3국을 순방하면서 '고려인'에 대한 관심을 정부 측에 촉구하기도 했다. 우리 민족으로서 현지에 한국의 문화를 전파하는 홍보대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재외동포재단에 따르면 우즈베키스탄에는 20만 명 이상의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에 10만 명 이상, 러시아에 20만 명이 거주한다.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한국문화예술의 집' 같은 <고려인 문화센터>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기실,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한류 열풍이 이러한 문화센터 건립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다. 한류 문화가 자연스럽게 고려인들로 하여금 한민족이라는 강한 자긍심을 불러일으킨 것도 분명하다. 그렇다면 러시아도 가능하다. 고려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사할린에 <한국문화예술의 집> 같은 문화센터를 건립하면 러시아 한류의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비단 자원 외교 및 경제 협력에 국한되지 않는다.

고려인들을 중심으로 네트워크가 연결되면 유럽까지 넓게 뻗어있는 유라시아 지역에 한류를 확산할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이다. 우리가 고려인들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 사진출처: 통신원 촬영 및 캡처
- http://vk.com/onekorea
- http://onekorea.ru/

 

※ 참조:
http://russiafocus.co.kr/150-year-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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