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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8
게시일
2014-07-25
국가
러시아
자동차-가전제품서 장신구 등 생필품 까지
- 러 모스크바에 진출한 한국 기업과 제품들
방학이다. 기숙사는 텅 비었다. 친구들은 다들 고향으로 떠났다. 한 친구는 집이 블라디보스토크다. 모스크바에서 비행기로 9시간, 인천공항에서는 3시간, 러시아가 그렇게 가까운 나라였어? 그렇다. 러시아는 가깝다. 분단과 냉전, 이념 분쟁으로 멀게 느껴질 뿐이다. 집이 그립다. 돈은 없는데 매운 떡볶이가 생각난다. KFC에서 파는 매운 향료가 들어간 치킨만 먹어도 맵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아이들이다. 친구 생일날 떡볶이를 요리해 준 적이 있다. 쓰러졌다. 러시아 친구들은 우리처럼 차가운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지 않는다. 냉수나 냉차는 안 마신다. 뜨거운 차를 줬다. 까무러쳤다. 얼얼한 입엔 우유가 특효다. 다행히 그 친구와 아직까지도 잘 지내고 있다. 우유 덕분이다.
매운맛이라…. 한국은 폭염 특보에, 연일 무더위가 기승이라는데 고루하고 젠체한 글쓰기는 접자. 아는 척하느라 본인도 힘들다. 오늘은 모스크바에서 한국의 ‘표정’을 찾아보기로 한다. 목적지는 한국 식료품 가게로 잡는다. 최근 모스크바 남쪽 ‘아카데미체스카야’ 지하철 근처에 한국 식품점(Корейский магази)이 두 번째로 문을 열었다. 수첩에 품목을 적는다. 고추장, 된장, 라면, 간장, 콩나물, 두부, 소주!!(소주는 빼자. 너무 비싸다)

모스크바에는 어떤 한국 제품들이 있을까. 이 먼 이국땅, 모스크바에서 팔리는 한국 제품들을 따라 산책하기로 한다. 러시아로 산책을 굴랴찌(гулять)라고 하는데, 심심하면 개 데리고 산책하는 게 이곳 사람들의 취미다. 오죽하면 안톤 체홉은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이라는 작품을 썼을까. 젊은이들이 많이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도 ‘산책’이다. 모스크바에는 공원이 많다. 그것도 아주 오래된, 수풀이 우거진. 모스크바 사람들은 길을 따라, 공원을 따라 산책한다. 걷고 또 걷는다. 돈이 없어도 된다. 걷고 또 걷다보면 오후 나절에 나와도 금세 주위가 어둑해진다. 한국인들은 산책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한번은 친구가 물었다. “한국 사람들은 어디에서 산책하니?” 갑작스런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이내 생각해냈다. “어, 커피숍이나 레스토랑이나 쇼핑몰을 따라 산책해.”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말을 뱉고 나니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커피숍에서 만나서 차를 마시고, 음식점에 가서 밥을 먹고, 유명 아이스크림 가게 같은 곳에서 대화를 하다가 영화관에 간다. 아니면 주점에 간다. 이때였다. 한국에서는 ‘문화와 소비가 같은 단어가 아닐까’하고 생각해 본 것이...
모스크바 근교에 사는 친구와 동행했다. 어떤 한국 식품을 파는지 보고 싶다고 했다. 기숙사를 나와 지하철까지 걸어간다. 2km. 한국 같았으면 2km는 나에게 있어 곧 죽어도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탔을 거리다. 근데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본인도 걷는 게 익숙해졌다. 상대적 거리감이라고 해야 하나. 99,720㎢ 면적의 한국에 살던 나와 17,098,000㎢ 면적의 러시아에 사는 사람들과 나의 공간에 대한 관념은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길을 물어볼 때나 친구들이 고향에 갈 때 확실히 느낀다. “집까지 얼마나 걸려?” 친구 왈 “어, 이틀~~” 가끔 러시아인들에게 길을 물어볼 때가 있다. “여기 어떻게 가죠?” 행인 왈 “30분 정도 가면 나와요.” “30분은 무슨 30분…, 가보면 1시간이다.” 이런 거리 감각에 대한 이질감은 중국이나 미국, 캐나다 같은 큰 나라도 마찬가지일거다.
길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게 현대, 기아 자동차다. 쌍용차도 제법 많다. 최근 들어 부쩍 늘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대자동차가 작년 1/4분기 러시아 자동차 시장에서 판매율 1-2위를 다퉜다.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는 질문에 “한국에서 왔어요”라고 답하면 대부분 이곳 사람들은 횬다이(현대), 삼송(삼성), 엘지(엘지) 대우(대우)하고 엄지손가락을 지켜든다.

대우라~~. 대우는 부도나기 전 러시아 시장에서 급성장한 한국 기업이었다. 이들은 아직도 대우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 물론 대우에서 생산한 ‘르망’이 아직까지도, 그것도 자주 굴러다닌다.
한국 자동차가 선전하는 이유 가운데에는 도입된 지 얼마 안 된 자동차 신용구매 할부제도와 한국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한몫했다. 거리에는 아직도 30년이 지난 라다(LADA)나 볼가(BOLGA)같은 러시아산 자동차가 활보한다. 이 털털거리는 낡은 자동차 주인들이 한국 자동차 판매율을 높이고 있다.

차도로 뜨람바이부스(전기 버스)가 지나간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에서도 교통수단은 효과 있는 광고 수단이다. 뜨람바이부스가 ‘도시락’ 광고로 예쁘게 치장했다. ‘도시락’은 모스크바에서 잘 나간다. 러시아 법인명은 ‘KOYA’다. 도시락 라면이 러시아인들에게 처음으로 전해진 건 1992년이라고 한다. 소련 해체 이후 인플레이션과 물품 부족으로 식료품 가격이 급상승 할 때다. 부산과 블라디보스토크를 오가던 러시아인들이 ‘도시락’ 전도사가 된 셈이다. ‘KOYA’는 라면뿐만 아니라 스프 등 즉석 식품을 비롯해 음료수 등을 자체 생산 판매하고 있다. 물론 그중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은 즉석 라면이다. 면 종류는 러시아 인들의 주식 가운데 하나다. 그렇지만 기름에 튀긴 면 종류는 ‘KOYA’ 제품뿐이다. 그래서 라면을 이들은 ‘까레이스카야 랍샤(Корейская лапша)’라고 부른다.

물통을 가지고 나오는 것을 깜박했다. 기숙사 근처 식료품 체인점에 들렀다. 다른 곳에 비해 고급 식료품과 생필품을 파는 곳이다. 음료수를 들고 계산대에서 차례를 기다린다. 진열대에 한국 제품들이 놓여있다. 샴푸나 린스 같은 생필품이다. 350루블(한화 약 10,000원)을 웃돈다. ‘웰라’ 등 유럽 제품보다 비싸다. 대부분 소량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앞서 있던 러시아 아가씨가 점원에게 담배를 부탁한다. ‘에세 블랙’을 달란다. 가격은 70루블(한화 2000원). 러시아에서 파는 한국 담배는 지금으로선 ‘에세’ 뿐이다. 2년 전까지만 해도 간이 가판대에서 ‘레종’ 등을 판매했지만 자취를 감췄다. 한국에서는 ‘에세’가 중년 담배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러시아에서는 주로 여성들이 이런 얇은 담배를 핀다. 한국 화장품의 경우 ‘미샤’가 사할린과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진출해 러시아 여심을 사로잡고 있다.

지하철 역내로 들어갔다. 모스크바 지하철 내에도 간이상점이 많다. 주로 생필품이나 옷가지 등을 파는데 특히 장신구 상점이 인기다. 한국에 비해 상당히 비싼 편인데 유심히 들여다보니 상당수가 'Made in korea'다. 대형 상설매장이 아닌 이런 간이 점포에서는 스카프나, 티셔츠 등 한국 제품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점원에 따르면 과거 중국 제품이 주를 이뤘다. 현재까지도 80%는 중국이나 터키 제품이지만 한국 제품이 가격대비 품질이 좋고 견고하기 때문에 한국 제품을 구매해본 소비자들은 다시 물건을 찾는단다.
전철에 오른다. 바뀐 풍경이 있다. 1~2년 전까지만 객차 내에서 사람들은 책이나 신문을 봤다. 그런데 최근 들어 태블릿이나 스마트폰 이용자가 모스크바에도 많아졌다. 태블릿은 ‘애플’ 제품이 많지만 스마트 폰은 ‘삼성’제품이 우세다. 러시아 핸드폰 시장을 석권했던 ‘노키아’나 ‘소니’제품은 스마트 폰 시장이 주류를 이루면서 영광의 뒤안길로 사라진지 오래다. 물론 2G나 3G 사용자들 대부분은 아직도 ‘노키아’ 제품을 쓰고 있다.

아프토자브스카야 역에 도착했다. 처음엔 새로 문을 연 한국 식료품점을 가기로 했었다. 해맬 수 있다는 판단에 자주 들렀던 한국 식료품 1호점으로 찾았다(이곳은 러시아 하이트진로 법인이 운영하고 있다). 가게에 들어서자 현지인들이 눈에 띈다. 김치와 고추장, 당면, 라면 등 식료품을 집어 들고 있다. 소주도 한 병 진열대에서 빼든다. 매운 음식을 먹을 수 있냐고 통신원이 물었다. “처음에는 못 먹었어요. 근데 중독이에요. 먹으면 먹을수록 빠져들어요.” 함께 동행한 친구는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자주 오느냐고 물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한 달에 한번, 매운 음식이 땡 길 때 온단다. 한국 사람이냐고 묻고는 한국 요리를 잘하냐고 묻는다. “아마도”라고 답하자 재료는 자기가 살 테니 한국 요리를 해달란다. 뜬금없는 제안에 조건을 제시했다. '소주 열병 사서 기다리면 생각해 보겠다'(여기서 소주 한 병 값은 만원이다). 한바탕 웃고 작별했다.
집에 돌아와 요리한 떡볶이를 먹는다. 친구를 위한 떡볶이에는 간장 소스만 넣었다. ‘맵다.’ 가게에서 만난 러시아 친구도 같은 표정을 짓고 있겠지 상상하며 TV를 켠다. 헉~ 순간, 러시아 공영방송에서 빅뱅을 본 것 같다. '뭐지 내가 잘못 봤나?' (3년을 거주하는 기간 동안 통신원은 단 한 번도 러시아 공영방송에서 한국 연예인을 본 적이 없다) 한-러 상호방문의 해 공식 홍보영상이다. 홍보 동영상은 한국 천예의 자연과 빅뱅의 K-pop의 무대를 앵글에 담고 있다. 러시아 버전이었다.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 한국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영문 슬로건이다. 음식으로 비교하자면 고추장이라고 할까. 혀끝에 다면 맵고, 짜고 오물거리다 보면 알싸한, 목으로 넘기면 단맛이 여운으로 남다가, 물로 입가심을 하면 개운해지는 우리의 맛.
그 맛을 러시아인들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 사진출처: 통신원 촬영 및 캡쳐(러시아 포털 얀덱스, http://yandex.ru/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