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지난달(1월) 22일 지중해에서 러시아 '그림자 함대' 소속 유조선 '그린치호'를 나포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직접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프랑스 해군은 지중해 공해상에서 동맹국들의 지원을 받아 러시아에서 출항한 그린치호를 억류해 가짜 깃발을 게양한 혐의 등에 대한 수사를 개시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그림자 선단' 소속 유조선의 활동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자금 조달에 기여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러시아 무르만스크항에서 출항한 해당 선박은 가짜 깃발(코모로 국기)을 사용하고 있었다"며 "이 유조선은 영국의 제재 목록에는 '그린치호'로, 유럽연합(EU)와 미국의 목록에는 '칼호'로 등재돼 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의 그린치호 나포가 유독 주목을 끈 것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다보스 포럼에서 유럽 국가들에게 러시아에 대해 단호한 제재 조치를 촉구하면서 '수상한 유조선의 나포'를 강조한 연설 시점과 거의 동시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프랑스 해군은 일단 그린치호를 마르세유 항으로 인도한 뒤 선박을 조사하고 승무원들을 심문했다.
나포 발표가 나온 지 1주일 여만에 그린치호는 곧 풀려날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와 rbc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29일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나포 유조선의 석방 계획을 알렸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법적 요건 때문에 프랑스가 그린치호를 풀어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확인했다. 그는 "마크롱 대통령은 러시아와 연관된 유조선이 나포될 경우, 계속 억류할 수 있도록 관련 법률의 개정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이어 "유럽 전체가 프랑스의 사례를 따라야 한다"며 "(그림자 함대 소속의) 유조선 몰수가 전쟁 종식을 앞당기는 수단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국제해상법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공해상에서 민간 선박의 나포를 금지하고 있다. 러시아 항구로의 선박 운항을 차단하는 것은, 모스크바 입장에서는 선전포고로 간주될 수도 있다. 유럽 국가들이 그림자 함대에 속한 유조선을 나포하겠다고 끊임없이 위협하지만, 실제로는 일정기간 억류했다가 풀어주는 이유다.
지난해 10월에도 프랑스가 러시아산 원유를 실은 유조선을 나포했지만 며칠 후 석방했고, 핀란드와 독일도 러시아 항구를 오가는 선박을 억류할 때 같은 조치를 취한 바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유럽의 이같은 조치를 겨냥해 "러시아산 석유를 실은 유조선을 일시적으로 억류했다가 풀어주는 게 아니라 억류하고 (원유를) 몰수해야 한다"고 거듭 촉구해왔다.
마크롱 대통령이 약속한 법 개정은 러시아에 대한 새로운 유럽연합(EU) 제재 계획과 그 맥이 맞닿아 있다. rbc는 미 블룸버그 통신을 인용, "EU는 지금까지 거의 효과가 없는 러시아산 석유 가격의 상한제를 '서비스 금지'로 대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제재조치가 모든 EU 회원국의 지지를 얻는다면, 유럽 기업들은 가격과 관계없이 러시아산 원유 운송에 필요한 모든 보험 및 운송 서비스 제공이 금지될 수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전했다. '그림자 함대' 소속으로 이미 EU의 제재 목록에 오른 선박 598척이 그 대상이다. 지금까지는 상한 가격 이상의 원유 수송에만 보험및 운송 서비스가 금지됐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산 원유의 해상 운송 서비스 제공을 전면 금지하는 방안은 지난해 12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논의 된 바 있다. 관건은 러시아산 원유 수송을 원천적으로 제한할 EU의 대러 제재가 모든 회원국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점.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일부 EU 회원국들은 이미 가격 상한제를 서비스 제공 제한으로 대체하는 것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스트라나.ua는 "만약 이 제재안이 발효된다면, 러시아는 물론, 이미 베네수엘라 출항 선박의 봉쇄로 피해를 입은 중국으로부터 매우 강경한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러시아와 중국의 해상을 사실상 봉쇄하는 이 조치는 세계 분쟁의 주요 위험 요소 중 하나라는 것이다. 서방 국가들이 전쟁 발발후 지금까지 4년 가까이나 이 조치의 도입을 자제해 온 이유 중 하나도 이같은 위험 때문이라고 했다.
EU가 추진하는 제20차 대(對)러 제제안에는 러시아 은행과 석유 회사에 대한 새로운 제재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또 EU가 러시아에 대한 제재 회피를 도왔다고 의심하는 제3국의 암호화폐 서비스 및 금융 기관에 대한 2차 제재(제 3자 제재)도 추진중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스스탄에 대한 공작기계 및 특정 무선 장비의 수출 금지 검토가 대표적이다. 키르기스는 그동안 EU의 대러 제재를 우회하는 통로로 이용돼왔기 때문이다.
폐지를 검토 중인 EU의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는 2023년 2월 처음 도입됐다. 이때 상한 가격이 배럴당 60달러(원유의 종류에 따라 상한 가격이 조금씩 다르다/편집자)로 정해졌고, 2월 1일부터는 배럴당 45달러로 낮아진다. 러시아는 서방의 이같은 제재를 불법이라며 이에 대한 보복 조치로 석유 및 석유 제품 수출을 금지했다. 이 조치는 여러 차례 연장되었으며, 최종적으로 오는 6월 30일까지로 연장된 상태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