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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정상들간의 대화는 어느 나라에서든 기밀로 분류돼 대화 내용이 일정 기간 공개되지 않는다. 언론은 정상들이 공식석상에서 주고받는 대화만 영상으로 기록하고, 보도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통령의 주요 행적을 풀기자(주요 언론사 기자들이 돌아가며 취재한 뒤 이를 모든 기자들과 공유하는 방식/편집자)가 쫓는다. 대통령 사진 설명에 대통령실(청와대) 공동취재단이라고 쓰인 것이 대표적이다. 모 언론사 사진 기자가 풀기자로 대통령을 수행하면서 찍은 뒤 이를 출입(혹은 가입된) 언론사에 배포한 것이다.
2022년 9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유엔 총회 참석차 방문한 미국 뉴욕에서 글로벌펀드 회의에 참석한 뒤 참모들과 걸어가며 한 '비속어' 발언 논란도, '풀기자'로 따라다닌 모 방송사가 문제 제기하면서 불거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언론사 기자들은 현장에 없었으니 개입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논란은 풀기자 소속 방송사와 대통령실, 여야간의 지루한 논쟁으로 이어진 바 있다.
자세한 내막을 잘 모르겠으나, 유럽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벌어진 듯하다. 프랑스 TV가 2025년 5월 10일 트럼프 미 대통령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유럽 정상들 간의 전화 통화 내용(영상)을 공개했는데, 당초 알려지거나 언론 보도와는 좀 거리가 있었다. 윤 전 대통령 사건과는 달리, 논란이 더 확산되지 않을 수도 있으나, 전시(戰時)에 실제 사실(팩트)와 다른 내용을 의도적으로(?) 발표하는 일방적인 프로파간다(선전) 혹은 저널리즘(전쟁 저널리즘, 이진희 저 우크라이나전 3년째 전쟁 저널리즘 참조)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와 rbc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프랑스 TV는 17일 엑스(X)를 통해 트럼프-젤렌스키 대통령의 5월 10일 통화 녹음 파일을 공개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스타머 영국 총리, 메르츠 독일 총리, 투스크 폴란드 총리가 키예프(키이우)에서 젤렌스키 대통령과 만난 뒤 푸틴 대통령에게 "5월 12일부터 30일간 무조건적인 휴전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전달한 바로 그때다.
녹음 파일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정상회의 중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크롱 대통령: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금 너무 이른 시간인 줄 알지만, 죄송하다. 2분 후에 나와 젤렌스키 대통령,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에게 다시 전화해 줄 수 있느냐?
트럼프 대통령:무슨 일이냐?
마크롱 대통령:젤렌스키 대통령이 30일간의 휴전에 동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오, 그건 노벨상 감이다.
두 정상은 다시 통화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마크롱 대통령의 휴대전화기를 탁자 위에 놓고 정상들이 둘러 앉았다.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마크롱 대통령:그(젤렌스키)는 당신(트럼프)의 제안에 동의했다. 30일간의 휴전에 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
트럼프 대통령:그가 (진짜) 제안을 수락했나?
마크롱 대통령:그렇다.
트럼프 대통령:오, 대단해! 노벨상감이야, 당신이 최고야.
이에 젤렌스키 대통령이 끼어들여 "우리는 휴전에 동의하지만, 만약 그들(러시아)이 휴전을 지지하지 않는다면 제재를 가하고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러시아)이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과 좋은 협상을 해왔다. 모든 게 잘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트라나.ua는 그러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날(5월 10일)보다 훨씬 앞선 2025년 3월(트럼프 대통령과의 백악관 설전과 그에 따른 미국의 무기및 군사정보 중단 조치 이후/편집자)에 이미 트럼프 대통령의 휴전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짚었다.
문제는 젤렌스키 대통령-유럽 정상들이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한 뒤 가진 공동 기자회견(일부에서는 공동성명) 발언과 배치되는 통화 내용이라는 사실이다.
스트라나.ua는 "당시 그들(젤렌스키-유럽 정상들)은 푸틴 대통령에게 사실상의 '최후통첩'을 보낼 때, 즉 휴전에 동의하지 않으면 미국과 함께 제재를 가하기로 트럼프 대통령과 합의된 것처럼 말했다"면서 "그러나 공개된 녹음 파일에서는 그러한 내용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이 한달간 휴전을 거부할 경우, 러시아에 대한 압력을 강화하자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요청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푸틴 대통령은 휴전 제안을 거부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측에 어떠한 제재도 가하지 않고, 오히려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크렘린의 역제안을 받아들여 직접 협상을 촉구한 바 있다. 이에 러-우크라는 5월 16일 튀르키예(터키)의 이스탄불에서 2022년 3월 이후 3년여 만에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스트라나.ua는 "공개된 녹음 파일은 젤렌스키 대통령과 유럽 정상들이 트럼프 대통령과 협상하는 과정, 그리고 그 내용이 이후 공개 발표 때와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여주는 매우 유익한 사례"라고 꼬집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유럽 정상은 그날(10일) 공동 기자회견에서 러시아 측에 30일간의 무조건적인 휴전을 요구(최후통첩)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후 텔레그램을 통해 "유럽 정상들과는 5월 12일부터 최소 30일간 완전하고 무조건적인 휴전을 하기로 합의했다"며 "러시아가 휴전을 거부할 경우, '특히 은행 및 에너지 부문'에 대한 강력하고 새로운 미국과 유럽의 제재가 도입될 것"이라고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對)러 제재 합의를 전제로 한 포스팅이다. 최소한 부풀리기 아니면 왜곡이라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러시아 매체 rbc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정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통화 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30일간의 휴전에 합의할 것을 촉구하고, 휴전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제재를 가하겠다"고 경고했다. 당시 모스크바는 전승절 80주년 기념 행사를 앞두고 5월 8일 자정부터 5월 11일 자정까지 휴전을 일방적으로 발효한 상태였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승절 80주년 기념 휴전을 거부하고 "즉각적이고, 완전하며, 무조건적인 휴전, 최소 30일간의 휴전"을 요구했다.
푸틴 대통령은 30일 휴전 제안에 "그 기간에 우크라이나가 강제 동원을 계속할 것인가? (서방은) 그곳에 무기를 공급할 것인가? 동원된 부대를 훈련시킬 것인가? 아니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조건부 휴전 의사를 피력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도 "푸틴 대통령이 한 달간의 휴전 아이디어를 지지했지만, 미묘한 문제가 수없이 존재한다"며 "이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이를 논의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사실상 거부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유럽 정상들의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 이후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럽연합(EU) 관계자들을 인용해 "유럽은 크렘린이 30일간의 휴전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독-러 해저 가스관인) 노르트 스트림(노드 스트림) 2에 대한 제재를 가하고 가스관 차단을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미국 투자자들은 러시아의 가스 운송 인프라(가스관)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특히 엘리엇 투자 펀드(Elliott Investment Management)는 '투르크 스트림' 가스관의 지분 인수를 위해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진희 기자 jhman4u@buyrussia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