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중심가를 걷다 보면, “여긴 왜 이렇게 시원하게 넓지?” 싶은 대로(大路)가 나온다. 대표가 트베르스카야(옛 고리키 거리)다. 그런데 이 도로가 넓어지는 과정에서 단지 낡은 건물을 철거하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건물 자체를 들어 올려 레일 위에 올리고, 수만 톤짜리 덩치를 ‘미끄러뜨려’ 뒤로 옮기는—말 그대로 ‘건물 이사’가 벌어졌다. 이 대규모 실험은 1935년 승인된 ‘모스크바 종합 재건 계획’(스탈린식 도시 개조)의 일부였다. 역사적 도심을 사회주의 수도의 “웅장한 얼굴”로 재단장하겠다는 계획 아래, 주요 간선도로는 더 넓고 곧게 뻗어야 했다.
‘철거’ 대신 ‘이동’… 왜 굳이 옮겼나
트베르스카야는 크렘린으로 향하는 상징적 축이었다. 당국이 원한 건, “기존 도시의 구불구불함”이 아니라 퍼레이드와 차량 흐름을 감당하는 직선 대로였다. 문제는 길가에 줄지어 선 건물들. 당장 모두를 부수면 빠르지만, 어떤 건물은 상징성이 컸고(혹은 기술 과시의 욕망이 컸고), 또 어떤 건물은 “부수기 아까울 만큼” 무거웠다. 그래서 선택지가 생겼다. 없애지 말고, 뒤로 밀어 넣자.
주민이 살고 있는데도 움직였다: ‘건물 이사’의 방식
소련식 건물 이동은 한마디로 “기초에서 건물을 분리 → 금속 프레임으로 보강 → 레일·롤러 위에 올림 → 전동 윈치/견인으로 천천히 이동”이었다. 기술의 핵심은 ‘건물을 부수지 않고’, 그리고 ‘사람을 내보내지 않고’ 옮기는 데 있었다. 실제로 모스크바의 대표적 이동 사례들 중 상당수는 주민이 거주한 채 진행됐고, 통신선·수도·전기 같은 설비를 임시 연결로 유지하려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워싱턴포스트가 소개한 당시 자료에는, 한 건물 아래에 레일 13개를 깔고 금속 롤러 1,200개를 놓아 이동시켰다는 구체적 디테일도 등장한다. “건물이 움직이는 동안 전화선을 풀어 통신을 끊기지 않게 했다”는 장면 묘사까지 있다.
이런 프로젝트를 이끈 인물로는, 건물 이동 분야의 핵심 엔지니어로 거론되는 에마누일 겐델(Emmanuel Gendel)이 반복적으로 언급된다.
모스크바 ‘건물 이동’ 대표 사례 3
1) “가장 무거운 집” 사빈스코예 포드보리예: 2만3천 톤을 한밤에
트베르스카야 6번지 안쪽(‘아치’를 통과해 들어가는 안뜰)에 숨어 있는 화려한 건물이 있다. **사빈스코예 포드보리예(Саввинское подворье)**다. 기록에 따르면 이 건물은 1939년 대로 확장 과정에서 약 50m가량 뒤로 이동됐고, 무게 2만3천 톤급으로 “이동된 건물 중 최중량급”으로 자주 거론된다.
이 건물은 지금도 “왜 이렇게 안쪽에 박혀 있지?”라는 의문을 남긴다. 답은 간단하다. 살려두려고, 뒤로 밀어 넣었기 때문이다.
2) 모스크바 시의회 건물(현 모스크바 시청 인근): 2만 톤을 ‘앞마당째’ 이동
트베르스카야 13번지의 모스크바 시의회(Моссовет) 건물도 이동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자료에 따라 세부 수치는 다르지만, 1939년경 약 2만 톤급 건물이 뒤로 이동됐다는 설명이 확인된다.
3) ‘97도 회전’까지: 모스크바 안과병원의 회전 이동
가장 “괴랄한” 사례는 따로 있다. 트베르스카야와 골목(현 마모놉스키 골목) 모서리의 모스크바 안과병원 건물은 이동 중에 무려 97도 회전을 했다는 기록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단순히 뒤로 미는 게 아니라 방향을 틀어 파사드(정면)가 골목을 향하도록 바꿨다는 것이다.
그럼, 이 기술은 소련이 ‘처음’이었나?
건물을 통째로 옮기는 아이디어 자체는 더 오래됐다. 15세기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아리스토텔레 피오라반티(Aristotele Fioravanti)가 종탑을 약 13m 이동시켰다는 기록이 대표적이다. 다만, 도시 단위로 ‘대량 실행’하고, 그것을 국가 프로젝트처럼 밀어붙인 사례로는 소련의 모스크바가 확실히 특이하다.
오늘의 모스크바는 왜 ‘옮기기’보다 ‘부수기’를 택할까
소련 시절의 건물 이동은 기술력 과시이자, 도시를 새로 깎아내는 권력의 언어였다. 하지만 지금은 비용·일정·안전·사업성 앞에서, “같이 옮겨서 살리자”보다 **“철거하고 비슷하게 새로 짓자”**가 더 쉬운 선택이 되곤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럼에도 이 ‘건물 이사’의 기억은 남는다. 트베르스카야를 걷다가, 아치 안쪽으로 숨어든 사빈스코예 포드보리예를 마주치는 순간, 모스크바의 20세기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우리는 도시를 넓힌 게 아니라, 도시를 밀어 옮겼다.”
최승현 에디터 buyrussia2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