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Jan 2026

중세 러시아의 ‘미인’ 기준은? - “예쁜 얼굴”보다 먼저 묻던 것: 건강, 명예, 그리고 ‘살림 실력’

중세 러시아(특히 전통 농촌·도시 공동체)에서 여성의 아름다움은 오늘날처럼 ‘마른 몸’이나 ‘개성 있는 스타일’ 중심으로 정의되지 않았다. 당시 미의 핵심은 대체로 건강함(출산·노동 능력), 단정함, 그리고 ‘좋은 이름(명예)’에 붙어 있었다. 그래서 러시아의 미인상은 종종 “모성”과 연결되며, 외모는 그 결과로 따라오는 지표에 가까웠다.

 

1) ‘슬라부트노스티(славутность)’: 외모만으로는 부족했다

원문에서 핵심으로 잡은 ‘슬라부트노스티’는 단순히 “예쁘다”가 아니다. 민속·전통문화 연구에서는 이것을 외모의 호감도 + 태도/예절 + 사회적 평판 + 무엇보다 ‘정숙한 이름(честное имя)’까지 포함하는 복합 기준으로 설명한다. 쉽게 말해, 중세 러시아에서 인”은 ‘잘 생긴 사람’이 아니라 ‘좋은 신붓감’과 거의 겹쳤다. 외모는 첫인상이고, 평판은 최종 합격표였다.

2) 혈색이 좋아야 미인: ‘피와 우유(кровь с молоком)’의 미학

러시아에는 오래된 관용구가 있다. “кровь с молоком(피와 우유)”—하얀 피부에 붉은 혈색이 도는 건강한 얼굴을 칭찬하는 표현이다. 이 표현 자체가 러시아 민간 미의식에서 ‘흰색(우유) + 붉은색(피)’의 조합이 곧 건강과 아름다움이라는 관념을 반영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하얗다/붉다”가 미적 취향을 넘어, 당시 기준으로는 병약하지 않다는 신호였다는 점이다. 실제로 민속·사회사 연구에서도 농촌 공동체의 미인상은 “힘, 생식력, 체력”과 강하게 연결돼 있었다고 정리한다.

참고로, 종종 떠도는 “80kg은 넘어야 미인” 같은 수치는 후대의 과장된 이야기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학술적으로 확인 가능한 핵심은 ‘정확한 kg’가 아니라 ‘도도하고(당당) 도톰한(дородность) 체형=건강’이라는 가치다.

3) 화장도 했다—다만 ‘너무 티 나면’ 흉이 되기도

원문처럼 러시아 여성들은 분(백분), 연지(볼), 눈썹·속눈썹 강조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여럿 전한다. 특히 “짙은 눈썹(검은 담비 같은 눈썹)” 같은 표현은 민간에서 젊은 여성의 미를 묘사할 때 반복된다.

17세기 외국인 여행자 아담 올레아리우스(Adam Olearius)는 모스크바 여성들의 화장에 대해 밀가루를 끼얹은 듯 보일 정도로 과하다고 적었다는 대목이 널리 인용된다. (그의 기록은 러시아 사회를 ‘밖에서 본 관찰’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당시 화장법을 보여주는 중요한 외부 시선이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는, 러시아 관련 문화사 글에서 백분·연지·‘수르마(сурьма)’ 계열의 눈썹/속눈썹 흑화가 언급되며, 성분의 유해성(납·수은 계열) 문제를 다루는 자료도 있다. 즉 예뻐지려다 몸을 해치기도 했다는 이야기다.

4) 걸음걸이: ‘백조처럼’ 서두르지 않는 단정함

중세·전통사회에서 미는 얼굴만이 아니라 자세와 태도였다. 느긋하고 침착한 걸음, 허리를 곧게 세우는 방식은 ‘품위’로 해석됐고, 이는 곧 슬라부트노스티의 일부(예절·태도)로 연결된다.

5) 긴 머리와 땋은 머리: “신분·혼인 상태를 말해주는 표지”

러시아 전통에서 머리카락은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라 사회적 신호 체계였다. 미혼 여성: 보통 한 가닥의 긴 땋은 머리, 혼인/약혼 신호: 리본 등의 장식으로 ‘상태’를 암시, 기혼 여성: 두 갈래로 땋아 머리 위로 올리고 머릿수건·머리장식으로 가리는 관습. 이 “한 가닥,두 가닥” 규범은 러시아 전통 복식·생활문화 소개 자료들에서도 반복적으로 설명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보여주느냐, 가리느냐’다. 기혼 여성이 머리를 드러내는 일은 무례와 수치로 연결되었고, 이 관습은 러시아어 표현 “опростоволоситься(머리를 드러내다→망신당하다/실수하다)”의 어원 설명에서도 확인된다.

원문에 나온 ‘야비·나비·프라비(явь/навь/правь)’ 3세계 신화 해석은 현대의 신이교(rodnoverie) 쪽에서 대중화된 틀로, 정통 고대 슬라브 사료로는 확인이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니 이 대목은 “전통적 믿음”이라기보다 후대의 상징적 해석으로 조심스럽게 다루는 편이 정확하다.

 

6) 진짜 ‘슬라부트니차(славутница)’는 “팔방미인”이었다

예쁜 얼굴과 풍성한 머리만으로 ‘슬라부트니차’가 되긴 어렵다. 전통사회에서 “좋은 신부”는 곧 “좋은 살림꾼”이었다. 자수·바느질·요리·집안일, 공동체 규범을 아는 태도, 말투와 예절—이런 것들이 한 덩어리로 평가되었다는 설명이 연구·민속 자료에서 반복된다. 결과적으로 중세 러시아의 미인은 생존력과 평판이었다. 정리하면, 중세 러시아에서 미인은 ‘날씬함’이 아니라 건강함, ‘화려함’이 아니라 단정함, ‘개성’이 아니라 좋은 이름(명예)에 가까웠다. 혈색이 좋은 얼굴, 긴 머리와 단정한 땋음, 서두르지 않는 태도, 부지런함—이 모든 요소는 결국 한 문장으로 수렴한다. 그 시대의 미인 기준은, 그 시대가 요구한 삶의 능력이었다.

최승현 에디터 buyrussia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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